위치:    
보이기:     모듈 :   
처음으로  
  Search
Start
Get Cookie : ASDHFASDJK_naramal_so
Cookie Exist
0001-01-01 00:00

End
전국국어교사모임 바로가기



 
  1모둠
  2모둠
  3모둠
  4모둠
  5모둠
  1모둠
  2모둠
  3모둠
  4모둠
  5모둠
  1모둠
  2모둠
  3모둠
  4모둠
  5모둠
  6모둠
  7모둠
 

 댓글을 남겨주세요 close  
제목
3차 감상문(2모둠 권정혜)
조회 13
회원이미지권정혜
2011-11-07 16:54:59
       

해피 피트 감상문 3차

표면과 이면

 

방이중 권정혜

해피 피트! 영화를 보는 내내 잡티 없는 흰 눈밭과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 빛의 대비가 마음을 청정하게 만든다. 그리고 멈블의 탭댄스, 그리고 펭귄들의 군무와 노래, 밉지 않은 악동같은 라먼 일행의 유쾌한 춤과 노래, 글로리아와 노마 진의 노래만으로도 유쾌하고 행복하다. 그리고 주류 사회로부터 소외당하고 이단아로 몰리며 기근의 원인을 제공하는 혐의가 씌워져 추방당한 멈블이지만 별로 불평도 낙담도 하지 않는다. 그치지 않는 문제해결을 위한 탐구와 탐험, 모험심으로 결국 인간을 만나고 끝내는 동족의 문제를 해결하는 펭귄사회의 진정한 승리자, 종결자로 마무리를 하는 영화는 희망을 품는다. 멈블은 인간 존재에 대한 정보를 놓치지 않고 잘 새겨 두었다가 마지막까지 강자에 대해 선한 의지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는 믿음과 사랑은 빙하의 추위를 녹인다. 따뜻하고 울림이 있는 가족 에니매이션이다. 흥겨운 펭귄들의 군무로 마무리되는 행복한 영화다.

그러면서도 영화는 곳곳에서 우리가 가진 부정적인 모습을 날카롭게 예리하게 파헤친다. 어린이를 위한 에니매이션만은 아닌 듯하다. 해피 피트의 유쾌한 탭댄스와 노마진과 글로리아의 아름다운 노래 아래로 깔려 있는 무거운 주제들이 영화의 깊이를 더해 준다. 인간 사회의 부조리한 면을 조롱하고 준엄하게 심판한다.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다.

첫째는 권력자들의 모습이다. 노아와 권력층들은 기근의 문제를 주류 사회의 소외자, 멈블에게 혐의를 씌워 그들의 허위와 무능을 교묘하게 피하고 있다. 그리고 진정성도 없다. 단지 자신들의 권력 유지와 체제 수호만이 목표일 뿐이다.

둘째는 종교다. 종교는 이제 구성원이 가진 문제를 해결하고 위안하기 보다는 그 어려움을 이용해 배를 불린다. 러블리스는 자기만이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자신을 우상화하고 대중들을 속인다. 복채를 받아야만 상담을 해주며 여자들을 탐한다. 우리의 비틀어진 종교의 모습이다. 황제국의 노아 역시 절대적인 존재, 귄에 대한 기도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자신의 절대적인 권능에 맞서려 하는 자들을 용서하지 않으며 자신의 무능함을 전가시킨다. 권력을 비호하고 유지시켜주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권력과 결탁한 부패한 종교다.

셋째는 인간의 이기심이다. 지구상의 다른 생명체와 공존하려하기 보다는 인간이 가진 기술력과 폭력으로 인간만을 위한 사회를 만들어 간다. 남극 동물의 평화를 깬, 먹이 사슬을 망가뜨린 장본인이다. 공존이 아니면 다함께 파멸한다.

넷째는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획일적 문화라는 사회적인 폭력이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다. 새로운 변화를 거부한다. 멈블을 집단적으로 따돌릴 뿐만 아니라, 급기야는 체제를 위협하는 불온한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다들 노래할 때 춤추는 것이 왜 나쁜 것인가. 아버지는 펭귄답지 않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남과 다른 것을 선호하는 노마 진은 아들의 다름을 아름답다고 한다.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냉혹한 사회다. 멤피스는 아들을 부정하고 주류 사회에서 소외당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아들마저 마녀 사냥에 바치는 꼴이라니. 멈블의 아버지는 멈블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자식에게 오히려 걸림돌이었고 멈블의 추방에 협력했다. 사회적인 잣대로 멈블은 낙오자가 되었고, 시대의 죄인이 되었고, 집단을 타락시키는 범죄자가 되었던 것이다.

무섭다. 우리도 이런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내가 가르치는 교실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가. 답은 하나가 아닌데. 나의 편협한 눈으로 아이를 재단하고 있지나 않은지. 나도 기성세대다. 내 생각과 말로 상처주고 교사의 권위를 이용해 억압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나는 나를 넘어서는 큰 생각들이, 큰 제자들이 나오기를 가로막고 있는 걸림돌이 아닌지. 우리 교실에서 멈블과 같은 이를 찾아봐야겠다. 교실 너머의 다른 세상을 꿈꾸는 아이가 있다. 그런데도 학교를 졸업하지 않으면 절대로 안 된다는 멤피스의 말을 나도 하고 있다. 나의 거짓된 신앙으로 아이들을 단죄하고 불행하게 하지는 않았던가. 내게서 노아와 멤피스를 찾아서 극복해야 한다. 모두가 옳다고 하는 것에 대해 아니오라고 한번쯤 문제를 던져 본 적이 있었는가. 나의 영혼과 생활이 얼마나 자유로운가. 나는 행복한가. 주류 문화를 따르기 위해 인생을 소모하고 있지는 않는지 물어본다.

 
 회원이미지권정혜  2011-11-07 16:55   답글    
주말~인터넷 접속이 여의치 않아 이제야 올립니다.
    2011-11-07 19:50   답글    
글을 읽으니 교사로서 저를 반성하게 되네요.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우리 사회의 문제를 곳곳에서 짚고있는 영화 해피 피트는 여러 층위로서 볼 수 있는 작품인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회원이미지최시한  2011-11-07 21:17   답글    
너무 많은 내용을 담고 있어서, 감당하지 못할까봐 선택과 집중을 하시라고 했던 성싶은데, 그냥 밀고 나가 한 편의 글을 완성하셨군요. 남들이 수선화나 튤립을 심을 때 개나리를 심었고,그것을 잘 키워내셨습니다. 다만 개나리가 무성하게 뒤얽히다보니 제목으로 삼을 꽃송이를 찾지 못한 게 흠입니다.
그래서 이 글은, 다른 글들과는 달리, 본래 <<해피 피트>>가 지니고 있는 양면성 -- 경쾌하고 재미 있음과 무겁고 진지함--을 모두 언급할 수 있었습니다. 첫째, 둘째 하면서 이 영화에서 비판되고 있는 것들을 여러 가지 다룰 수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마지막 단락에서, 한 걸음 나아가 우리 현실의 비판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더 욕심을 낸다면, 넷째 항이 나머지 항들과 나란히 놓일 수 있는지, 마지막 단락의 문제 제기가 둘째와 셋째 항과는 관계가 적은데 그래도 되는지 등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글의 짜임을 위해서는 앞의 네 항을 두 항이나 세 항으로 줄이거나, 마지막 단락의 내용을 앞의 네항에 맞추어 수정할 수도 있습니다.
댓글을 남겨주세요     ( 0 / 2000자 ) ( 최대 2000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