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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해피 피트 2차 글쓰기
조회 15
회원이미지김옥순1
2011-10-24 14:22:24
       
해피 피트-소통을 향해 나가는 행복한 발걸음
 
  불통은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사람들이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의 사고가 그 집단을 지배하는 통념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권위와 결합하여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게 되고, 그것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은 무조건 잘못된 존재이고 집단에 해가 될 수 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배척을 하게 된다.
멈블도 황제펭귄 집단의 통념에서 벗어난 존재였기에 배척을 당했다. 알을 품을 때 알을 절대로 떨어뜨려서는 안 된다는 통념이 지배하는 황제펭귄 집단에서 아버지 멤피스는 알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래서인지 멈블은 음치로 태어났고 하트송을 부를 수 없다. 그러나 탭댄스 실력은 타고났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능력은 황제펭귄의 무리에서는 용납되지 않는 것이었다. 우두머리 노아는 멈블의 탭댄스를 타락이라 규정짓고 그 타락으로 인해 물고기가 사라진 것이라 주장하며 멈블을 추방한다. 그러나 멈블은 아델리 펭귄인 러블레스를 통해 노아가 가진 권위적 통념의 허상을 보았기에 노아가 두렵지 않다. 멈블의 독특함이 자신의 부주의 때문이라며 죄책감에 빠져있던 멤피스는 아델리 펭귄 친구들과 관계를 끊으라고 하지만 멈블은 아버지의 말을 거역하고 물고기가 사라진 이유를 찾아서 다시 돌아오겠다며 떠난다. 러블레스의 목에 걸린 고리를 통해 물고기가 사라진 이유가 인간들이 물고기를 싹쓸이했기 때문임을 안 멈블은 인간 세계로 나가 펭귄 세계의 존재를 인간들에게 알리고 남극 주변에서의 어획 금지를 이끌어 낸다.
  인간세계에서 멈블의 등장은 자신들의 통념을 깨는 사건이었다. 감독은 멈블의 이야기를 진행해 가면서 갈매기의 발찌, 침몰하는 포크레인, 러블레스의 목걸이 등을 통해 인간의 힘이 남극의 세계에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자연에 대한 횡포는 포경선이 있던 항구의 황폐한 모습, 거대하고도 앙상하게 남은 고래의 뼈 등을 통해 보여주고 있으며, 그 절정은 동물원에 갇혀 미쳐가는 멈블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은 자연을 인간을 위한 자원으로 인식해 왔다. 남극에 사는 고래와 물고기들은 인간을 위한 식량자원이며, 동물원의 펭귄은 인간을 위한 관광자원일 뿐이었다. 그것이 인간을 지배하는 권위적 통념이었고, 인간은 아무 의심 없이 그렇게 살아왔다.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이익을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은 어리석기 짝이 없고,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사고로 치부했고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사회로부터의 격리 대상이거나 비난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환경에 대한 무자비한 파괴는 결국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로 나타났다. 영화 속에서 무너져 가는 거대한 빙하처럼 인류가 발전시켜온 문명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는 위기를 느끼게 해 준 존재로서 멈블이 등장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은 이 세상의 중심이 인간이라고 생각해 왔던 기존의 통념을 깨야한다. 개발을 통해서, 많은 어획량 획득을 통해서 최대한의 이윤을 얻는 것만이 옳다는 세계관을 깨고 인간은 결국 자연의 한 부분일 뿐임을 인식하고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 남극을 자원의 보고로 생각하고 그곳을 개발할 길을 찾는 것이 인류를 위해 좋은 일이라는 믿음을 깨고 인간이 알기 이전부터 그곳에서 살고 있던 동물들을 그 땅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그들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옆에서 볼 수 있는 자세가 바로 펭귄과 소통하는 길이고 더 나가서는 자연과 소통하는 길인 것이다.
  멈블은 먼 길을 다녀옴으로써 자신의 집단이 갖고 있는 지배적 통념을 깼다. 다른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황제펭귄의 집단이 얼마나 작은 세계에 갇혀 있는 지를 보여준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우리와 다른 존재를 만났을 때는 우리가 갖고 있는 전제를 바꾸어야 한다. 사고의 범주를 나의 세계보다 더 넓은 범주로 확대하려는 자세를 가질 때 우리는 제대로 된 소통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멈블의 발은 그에게 행운이었다. 남들과 다른 발이 있었기에 아들러 펭귄의 세계를 통해 자신의 무리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고, 더 넓은 세계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고, 그래서 자신의 사고를 좁은 사고의 틀에 가두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우리와 다른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 나의 세계관을 깰 준비가 되어 있는가? 더 넓은 세계로 당당하게 걸어갈 마음을 힘을 갖고 있는가? 내가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해 과감히 질문을 던질 수 있는가?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아버지와 노아의 요구를 거절하고 자신의 무리를 떠나 험난한 세계로 과감히 나갈 수 있었던 멈블처럼......
 
 
 
 회원이미지최시한  2011-10-24 19:08   답글    
펭귄 사이의 이야기와 펭귄과 인간 사이의 이야기를 하나의 맥락에서 다루고자 한 시도가 좋습니다. 하지만 표현과 전체 구성이 그에 철저하지 못한 듯합니다.
    2011-10-26 01:29   답글    
멈블이 소통을 어떻게 이루내는지 영화 속에서 찾으면 ... 그 장면을... 오!
 회원이미지김옥순1  2011-10-28 11:30   답글    
한계...
좌절...
절망...
더 이상 한 글자도 쓸 수 없을것 같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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