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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해피피트 감상글 2차 (3모둠 이행섭)
조회 16
회원이미지이행섭
2011-10-24 23:46:56
       
제목 : 지배자의 언어와 해방의 언어
3모둠 이행섭(대전지족고)
 이 영화는 소통의 여러 양상을 보여준다. 개인의 정체성 문제부터 공동체의 지배이데올로기로 작동하는 언어의 기능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억압으로부터 해방이나 종교적 초월과 관련된 소통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주인공 멈블은 공동체의 다른 펭귄들과 다르게 선천적인 음치이지만, 탭댄스의 재능을 타고났다. 이 펭귄 공동체는 노래로 소통하며, 자신의 노래를 발견하고 러브송을 불러 짝짓기를 하는 것이 생의 목표고 행복이다. 멈블은 공동체의 질서를 깨뜨리는 문제아이며 학교에선 구제불능의 외톨이다. 아버지 멤피스는, 공동체의 언어인 노래를 배우지 못하고 금기인 춤을 자제하지 못하는 멈블을 보호하지 못한다. 공동체 원로인 노아와 아버지에 의해 멈블은 공동체 내에서 살지 못하고 외부 세계로 추방당한다. 노래는 공동체의 언어이며 지배이데올로기이다. 이것을 공유하지 못할 때, 개인이나 가족이 겪는 불행은 너무 비참하다.
멈블은 공동체를 벗어나 춤을 재능으로 인정하는 다른 펭귄 친구들을 만나고, 외계인의 흔적을 목에 건 예언자 러브레이스를 만나 남극에 물고기가 줄어드는 이유를 밝히기 위해 여행한다. 러브레이스는 사이비 예언자로 권세를 누리지만 사실은 인간이 남극에 남긴 폐기물 때문에 목이 졸리는 고통을 당하는 자다. 이들이 눈보라를 뚫고 남극의 인간세계로 간다. 인간들이 건설한 언덕 위의 초라한 교회와 거대하고 압도덕인 항구와 공장의 폐허. 이 장면은 러브레이스가 사이비 종교 지도자이면서 거대한 물질문명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멈블은 인간의 엄청난 힘을 목격하고 그들의 물고기 남획에 몸으로 항의하다가 결국 인간의 땅까지 간다. 수족관에 갇혀 비참한 최후를 기다리다가 한 소녀가 멈블의 춤추는 재능을 알아보면서 인간 세상에 널리 알려진다. 그리고 무전송신기를 등에 매달고 멈블은 남극 고향에 돌아온다. 고향에서는 노아를 비롯한 원로들이 그를 위험한 존재로 규정하지만 새로운 세상에서 진실을 알아온 멈블은 남극의 ‘물고기가 줄어드는 진짜 이유는 외계인 때문이며 그들은 펭귄들의 춤에 반응하며 자신들을 도울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공동체의 펭귄들은 멈블을 따라 춤을 추고, 헬리콥터를 타고 인간이 나타나자 원로 지배자들도 함께 춤을 춘다. 펭귄 공동체의 지배이데올로기는 노래에서 춤으로 바뀐다.
남극 펭귄들의 집단적인 춤은 인간 세계에 방송되며 남극의 환경파괴에 대한 논쟁이 불붙는다. “펭귄은 날 수 없는 새에 불과하다.”는 주장과 “펭귄 없는 세상은 싫소.”라는 주장이 대규모 환경 운동의 현장 사진과 함께 빠르게 제시된다. 결국 남극에는 많은 물고기들이 다시 돌아왔고, 펭귄 마을은 수백만의 펭귄 무리가 번성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멈블의 춤은 더 고차원의 세계에 사는 인간과 소통하는 언어가 되었고 남극의 펭귄 공동체를 구원한 언어가 되었다. 그런데 인간을 향한 펭귄의 춤이라니, 어쩐지 절대자에 대한 종교의식 같기도 하다. 펭귄들은 춤으로 인간에게 공동체의 소망을 전달하고 그 소원을 이루었으니 그들에게는 신성한 의식의 언어가 될 수 있겠지만, 이 결론은 인간에 의한 또 다른 지배라는 점에서 인간과 펭귄의 가장 바람직한 공존의 모습인가라는 의문을 남긴다. 영화는 해피엔딩이지만 인간의 이기심을 잘 하는 우리 관객들은 이 결말이 다소 순진하고 불안해 보인다.
 
 회원이미지최귀연  2011-10-25 00:38   답글    
제목이 강렬해서 좋습니다. 저와 같이 이해가 짧은 사람을 위해 더 직접적으로 설명해주시면 좋겠어요.
따라서 노아와 아버지 그리고 인간의 언어가 어떻게 지배자의 언어로 드러나는지. 멈블의 언어가 어떻게 해방의 언어인지. 그리고 지배자의 언어와 해방의 언어가 어떻게 대조되는지를 설명해주시면 좋겠어요.
 회원이미지최시한  2011-10-25 21:35   답글    
영화에서 우리가 본 인물과 사건의 표면적 모습이 있습니다. 감상글을 쓸 때 우리는 그 구체적 형상에서 출발하여 어떤 추상적 의미 해석과 구성을 합니다. 그 해석과 구성이 작품의 구체성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추상적인 쪽으로 나아가는 정도에 따라 글의 깊이와 울림이 결정되게 됩니다.
깊이와 울림이 느껴지는 글입니다. 제목과 내용도 아주 밀착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해방의 언어'라는 개념에 다소 철저하지 못하였고, 그래서 마지막 부분이 느슨하거나 다소 미진해진 듯합니다.
 회원이미지이행섭  2011-10-26 00:22   답글    
두 분의 지도 덕분에 세 번째 글에 도전할 용기가 생깁니다. 고맙습니다.^^
    2011-10-26 00:59   답글    
언어로서 노래와 춤. 노래가 지배자의 언어이고 춤이 해방의 언어(새로운 언어)가 되는 것은 사회적 관계에 달려있음을 새롭게 느낍니다.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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