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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해피피트 감상글 3차
조회 12
회원이미지이행섭
2011-10-30 21:23:55
       
제목 : 지배자의 언어와 해방의 언어
3모둠 이행섭(대전지족고)
이 영화는 소통의 여러 양상을 보여준다. 개인의 정체성 문제부터 공동체의 지배이데올로기로 작동하는 언어의 기능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억압으로부터 해방과 종교적 초월과 관련된 소통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주인공 멈블은 공동체의 다른 펭귄들과 다르게 선천적인 음치이며, 탭댄스의 재능을 타고났다. 이 펭귄 공동체는 노래로 소통하며, 자신의 노래를 발견하고 러브송을 불러 짝짓기를 하는 것이 생의 목표고 행복이다. 멈블은 공동체의 질서를 깨뜨리는 문제아이며 학교에선 구제불능의 외톨이다. 아버지 멤피스는, 공동체의 언어인 노래를 배우지 못하고 금기인 춤을 자제하지 못하는 멈블을 보호하지 못한다. 공동체 원로인 노아와 아버지에 의해 멈블은 공동체 내에서 살지 못하고 외부 세계로 추방당한다. 노래는 공동체의 언어이며 지배이데올로기이다. 이것을 공유하지 못할 때, 개인이나 가족이 겪는 불행은 너무 비참하다.
멈블은 공동체를 벗어나 춤을 재능으로 인정하는 다른 펭귄 친구들을 만나고, 외계인의 흔적을 목에 건 예언자 러브레이스를 만나 물고기가 줄어드는 이유를 밝히기 위해 여행한다. 러브레이스는 사이비 예언자로 권세를 누리지만 사실은 인간이 남극에 남긴 폐기물 때문에 목이 졸리는 고통을 당하는 자다. 이들이 눈보라를 뚫고 남극의 인간세계로 간다. 인간들이 건설한 언덕 위의 초라한 교회와 거대하고 압도덕인 항구와 공장의 폐허. 이 장면은 러브레이스가 사이비 종교적 지도자이면서 거대한 물질문명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멈블은 인간의 엄청난 힘을 목격하고 그들의 물고기 남획에 몸으로 항의하다가 결국 인간의 땅까지 간다. 수족관에 갇혀 비참한 최후를 기다리다가 한 소녀가 멈블의 춤추는 재능을 알아보면서 인간 세상에 화제가 된다. 그리고 무전송신기를 등에 매달고 멈블은 남극 고향에 돌아온다. 고향에서는 노아를 비롯한 원로들이 그를 위험한 존재로 규정하지만 새로운 세상에서 진실을 알아온 멈블은 남극의 ‘물고기가 줄어드는 진짜 이유는 외계인 때문이며 그들은 펭귄들의 춤에 반응하며 자신들을 도울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춤은 삶의 목적이며 펭귄신의 명령이라는 지배이데올로기가 허구라는 것이 폭로되며 펭귄들은 허위의식에서 해방된다. 공동체의 펭귄들은 멈블을 따라 춤을 추고, 헬리콥터를 타고 인간이 나타나자 원로 지배자들도 함께 춤을 춘다.
남극 펭귄들의 집단적인 춤은 인간 세계에 방송되며 남극의 환경파괴에 대한 논쟁이 불붙는다. “펭귄은 날 수 없는 새에 불과하다.”는 주장과 “펭귄 없는 세상은 싫소.”라는 주장이 대규모 환경 운동의 현장 사진과 함께 빠르게 제시된다. 결국 남극에는 많은 물고기들이 다시 돌아왔고, 펭귄 마을은 수백만의 펭귄 무리가 번성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멈블의 춤은 더 고차원의 세계에 사는 인간과 소통하는 언어가 되었고 남극의 펭귄 공동체를 구원한 새로운 지배 언어가 되었다.
영화는 해피엔딩이지만 인간의 이기심을 잘 아는 우리 관객들은 이 결말이 다소 순진하고 불안해 보인다. 인간을 향한 펭귄의 춤이라니, 어쩐지 절대자에 대한 종교의식 같다. 송신기를 달고 온 멈블은 인간의 의지를 전달하는 종교지도자의 모습이다. 펭귄 공동체가 춤을 추고, 그 춤을 내려다보는 인간들의 웃는 모습을 통해, 이제 그의 춤은 인간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전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펭귄들은 해방되었는가? 이제 세계를 자신의 눈으로 보고 자신의 의지대로 사는 존재가 되었을까? 펭귄 공동체의 지배이데올로기는 노래에서 춤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새로운 지배자는 인간이다. 인간에 의한 또 다른 지배는 동화처럼 포장되었다. 인간의 선한 의지에 의해 유지되는 아름다운 공존이 얼마나 지속될지 의문이다.
 
 회원이미지이행섭  2011-10-30 21:30   답글    
어제 이 글을 가지고 2강에 참가해서 최시한 선생님 지도를 받았습니다.
소통의 문제를 다루었는데, 멈블의 춤이 '해방의 언어'라고 한 것이 적절한지, 그리고 끝부분이 혼란스러워 글이 완결성을 갖추지 못한 듯하다고 조언해 주셨습니다. 제가 선생님의 평을 정확히 이해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점을 고민해서 마지막 4차 글을 완성해 보겠습니다.
어려움 속에 초인적인 열정으로 지도해주시는 최시한 선생님, 항상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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