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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4차 감상글 5모둠 최귀연
조회 17
회원이미지최귀연
2011-11-03 00:02:01
       
                                     일방적 지시에서 상호소통으로                경기 이충고 최귀연
 
   영하50도가 넘는 남극의 긴 겨울밤, 엄숙한 지도자 노아는 알을 보호하기 위해 모두를 일사불란하게 모이도록 했다. 그러나  멤피스는 지도자 노아의 명령에 집중하지 못했다. 사냥을 떠난 아내의 하트송을 떠올리며 고통을 잠시 잊으려 했다. 그 순간 멤피스는 알을 놓친다. 남은 기간 자신의 실수를 숨기기 위해, 노아의 엄숙한 지시를 가장 크게 따라 외쳤지만, 아들은 남과 같지 않았다.  멈블은 태어나자마자 탭댄스를 추며 행복하다고 외친다. 하지만 멤피스는 자신을 자책하며, 아들을 황제펭귄답게 바꾸려 애를 쓴다.
   멤피스의 기대와 달리 멈블의 부족함은 채워지지 않는다. 멈블의 음치는 치료되지 못하고, 동료들과 어울리기 어려울 만큼  다른 존재로 낙인찍힌다. 지도자 노아의 명령은 너무 엄격하고 일방적이다. 그 명령에 따라 움직이다 잠깐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을 뿐인 멤피스는 멈블을 보며 괴롭다. 이런 멤피스는 아들의 다름을 부족함이라고만 여겼기에 멈블의 재능을 볼 수 없었다.
    동료들과 함께 하지 못하는 멈블은 갈매기와 바다표범의 먹이가 될 위기를 맞이한다. 그러나 생에 대한 열망과 행복한 힘을 가진 멈블은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남극은 더 이상 동물의 세계가 아니라, 동물을 유괴한 후 발찌를 채워 살려주는 외계인도 함께 살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된다. 그리고 바다표범에게 쫓겨 도착한 아델리 해안에서 침몰하는 굴삭기와 캔포장지를 두른 러블레이스를 보고 인간의 존재를 확신하게 된다.
    멈블은 라몬 무리들과 어울려 그들의 자유롭고 즉흥적인 모습을 보며, 자신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들의 권유로 다시 글로리아에게 하트송을 부른다. 립씽크였다는 것이 틀통나서, 글로리아에게 실망만 안겨준다. 그 순간 멈블은 자신의 해피피트 능력을 자각하며, 글로리아에게 자신의 탭댄스에 맞춰 노래를 부르라고 한다. 이에 글로리아는 멈블의 탭댄스에 맞춰 열정적으로 호흡을 맞추고, 동료들은 멈블! 멈블!이라 외치며 함께 춤추며 어울린다 .
    립씽크로 하트송을 부를 수 없듯이, 자신을 숨기면 소통은 이뤄질 수 없다. 탭댄스로 표현한 멈블의 하트송은 비로소 연인에게 그리고 동료로부터 인정받게 된다. 이 순간을 지켜본 노아는 불편하다. 서로 즐거워하며 소통하는 모습은 엄격한 지시자에게는 불편하다.  끝내 순종하지 않는 멈블을 내쫓아 버린다.
   멈블은 노아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은 이유를 증명해보여야 한다. 기근의 원인은 자신의 해피피트가 아니라,  인간의 행동이라는 것을 검증해야 한다. 그래야 가족과 연인이 살고 있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 천신만고 끝에 인간세상에 도착했지만, 인간은 펭귄어를 알지 못한다. 열심히 펭귄어로 설명하지만, 꽥꽥거리는 시끄러운 울음소리일 뿐이다.  목소리도 잃고 그들이 주는 먹이를 먹다가, 가족들을 떠올리며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절망한다. 그러다 부화하지 못한 알을 두드리던 글로리아의 손짓과 같은, 소녀의 수족관 유리벽 두드리는 소리에  멈블은 탭댄스로 대답한다. 그 순간 멈블은 인간의 시선을 끌 수 있었다.
   인간의 관심을 받으며 고향에 돌아온 멈블은 자책하고 있는 멤피스와 화해의 춤을 춘다. 그리고 인간에게 춤으로 우리의 마음을 전달해보자고 무리를 설득하고 춤을 춘다. 그 순간 엄격한 명령으로 통제하는 노아의 권위를 무너진다.  그리고 여전히 맨 꼭대기에서 엉거주춤한 춤을 추며 바라보고 있던 인간은 남극 동물과 소통하기 시작한다.
 
 회원이미지최시한  2011-11-03 22:35   답글    
3차 글을 밀어놓고 4차 글을 다시 쓰셨군요. 두 글을 비교해 보면 이쪽 극점에서 저쪽 극점으로 간 느낌입니다. 자기의 판단 중심, 자기가 설정한 제재 중심에서 대상(영화)의 요약 중심으로, 다소 지나치게 이동했다는 생각이 든다는 말입니다.
둘 중의 하나를 택하라면 저는 3차 글을 택하겠습니다. 거기에는 적어도 필자의 생생한 체험과 깨달음이 있으니까요. 새로 쓰기보다 그 글 결말부의 미진함, 즉 세상이 용기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버린 자의 회의주의를 적절히 해소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어째서 그 길로는 가지 않았을까요?
하여간 놀랍군요. 자기와 이렇게 대결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 내면의 힘을 잘 키워가십시오. 분명 어떤 웅숭깊고 평화로운 곳으로 선생님을 이끌어줄 테니까요. 잘못하면 그 날카로운 힘이 자신에게 상처를 입힐 수도 있으니, 조심하면서.
 회원이미지최귀연  2011-11-04 13:52   답글    
3차까지 감상글을 쓰면서 글쓰기는 자신을 직면할 수 밖에 없고, 그 과정을 끈질기게 붙잡으면 치유도 이뤄진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제가 부족한 것이 무엇이고, 결단을 내릴 때 왜 망설이게 되는 지도 알게 된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나에게만 집중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대상에 집중해서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제 글이 유치한 것은 제가 너무 제 자신에게만 빠져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 역시 자신을 학대한 것었습니다. 다시 3차 감상글을 고쳐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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