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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4차 5모둠 문경아
조회 15
회원이미지반디
2011-11-03 23:58:33
       

멈블, 발짓으로 세상을 바꾸다

 

불온한 것은 아름답다. 그 안에 불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프로메테우스의 불, 그 불이 낡은 세상을 바꾼다. 여기, 가슴에 불을 품고 자신의 길을 당당히 걸어간 아름다운 영혼이 있다. 영화 『해피피트』는 바로 그 영혼에 관한 이야기이다.

 물고기와 노래만 있으면 행복한 펭귄 마을. ‘마음속에 노래를 주시고 배 속에 고기를 주시는 귄님’을 찬양하며 길고도 추운 겨울밤을 펭귄들은 노래로 이겨낸다. 유난히 혹독했던 어느 겨울에 멤피스는 품던 알을 떨어뜨렸다. ‘절대로 품고 있는 알을 떨어뜨리지 말라.’는 최고의 금언을 어긴 그는 그해 겨울 가장 열렬히 노래한 펭귄이었다. 하지만 그의 아들 멈블은 남들보다 늦게 남들과는 다르게 태어났다.

 도그마와 터부로 지배되는 어둠의 사회. 금기를 어기고 태어난 그가 그 사회의 지배질서와 대립할 수밖에 없는 것은 운명이 아니었을까? 노래 대신 춤을 가지고 태어나 따돌림 당한 채 혼자만의 공간에서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멈블. 그의 마음속에서 싹트고 자라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갈망은 낡은 세계를 바꿀 혁명의 씨앗이었을 것이다.

 멈블의 춤을 위협으로 받아들인 지배세력은 물고기가 줄어드는 위기를 그의 탓으로 돌려 그를 추방한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멈블이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된다. 물고기가 없어지는 원인을 찾아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려는 멈블은 인간과 만나고, 춤으로 그들과의 소통에 성공함으로써 펭귄 마을을 위기에서 구했기 때문이다. 물고기도 돌아오고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펭귄들의 새로운 세계는 다양성과 자유, 소통, 평등의 가치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사회이다. 맹목적 신앙숭배와 권위적 지배질서에 의해 개인이 억압받는 전체주의 사회는 멈블의 발짓에 의해 깨진 것이다. 이렇게 멈블은 고난의 운명을 타고나 외로움을 벗하며 성장하고, 모험을 통해 자신의 운명을 시험하였으며 혹독한 시련을 이기고 돌아와 낡은 질서를 깨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냈다. 사람들은 그런 자를 영웅이라 부른다.

 사람들은 아직도 영웅을 기다린다. 하지만 현대사회에는 한 사람의 슈퍼 영웅이 아니라 수많은 멈블들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도 한 때는 멈블이었던 적이 있지 않았던가? 부당한 권위 앞에 순수한 마음 하나로 당당하게 맞섰던 순간이, 지금보다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입술을 깨물었던 그런 순간이 우리에게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안의 멈블은 어디에 있는가. 자신의 다름을 부끄러워하며 남과 같아지려고 하는 순간에, ‘아니오’라고 하고 싶지만 남들 때문에 ‘네’라고 하는 순간에, 길의 끝에 서서 막아야 할 것들을 위해 온몸을 던지지 못하고 뒤돌아선 그런 순간들마다 멈블은 눈을 감았을 것이다. 그렇게 멈블은 우리 안에서 오랜 시간 잊히고 버려지고 잠들어 있을 것이다.

 불온함이 더 이상 아름다움이 아니라 두려움이 되어 버린 지금, 우리 안에 잠든 멈블을 어찌할 것인가. 더 이상 아름다운 시절은 없는 것인가. 이제라도 멈블을 따라 신나게 힘차게 세상을 바꾸는 발짓을 해 보는 것은 정녕 불가능한가. 그런데 가슴을 두드리는 멈블의 발짓, 그 경쾌한 소리가 여전히 내 귀에 들리는 듯하다.

 
 회원이미지반디  2011-11-04 00:01   답글    
교수님께서 제목을 지적하셔서 바꿨는데 솔직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문장이 좀 걸리는 부분을 손질하고 뒷부분은 좀 많이 고쳤습니다. 크게 기조는 바꾸지 않았지만 개인적 소회를 좀더 보편적인 것으로 바꿨다고 할까요? 그게 더 좋은지도 역시 모르겠습니다. 그저 좌충우돌 덤벼보는 것이지요.^^
 회원이미지최시한  2011-11-04 22:38   답글    
제목과 내용이 어울리고, 내용도 졸가리가 서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문체 혹은 스타일의 문제가 조금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자신을 좀 풀어놓고 보다 자유로운 화법을 택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 시도는 바람직합니다. 하지만 점잖음과 무거움을 좋은 것으로 여겨온 우리 문화는 의문형 문장, 자문자답형 화법을 다소 불안정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게다가 글의 내용이 '불온한 것은 아름답다'는 내용이다보니 마지막 단락이 너무 튀오오르는 느낌, 그러니까 설득력을 잃어버린 느낌이 듭니다. 무거운 내용을 다소 가볍게, 너무 낭만적으로 처리한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까닭입니다. '과거'에 우리는 누구나 '불온한 아름다움'을 지녔던 것처럼 표현한 것도 그런 점을 부채질합니다.
스타일이 개성 있고 통일된 문장 -- 이는 문장가들이 추구하는 최종 목표의 하나입니다. 그 문제와 맞닥뜨렸으니, 좋은 체험을 하고 계신 셈입니다.
 회원이미지반디  2011-11-05 15:17   답글    
감사합니다. 다시 읽어보니 의문형 문장이 정말 많네요. 사실, 문득 든 생각인데, 이미 지구상 여기 저기에서 멈블의 발짓이 울리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확~비약해서 글의 결말을 현실 문제로 끌어오면 어떨까 생각도 해 봤답니다. 그러면 정말 불온한 글이 될까요? 다시 한 번 고쳐 보겠습니다.
    2011-11-05 21:29   답글    
불온한 것은 아름답다. 그 안에 불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프로메테우스의 불, 그 불이 세상을 바꾼다. 참 주제가 멋지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저는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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