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블, 발짓으로 세상을 바꾸다
불온한 것은 아름답다. 그 안에 불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프로메테우스의 불, 그 불이 낡은 세상을 바꾼다. 여기, 가슴에 불을 품고 자신의 길을 당당히 걸어간 아름다운 영혼이 있다. 영화 『해피피트』는 바로 그 영혼에 관한 이야기이다.
물고기와 노래만 있으면 행복한 펭귄 마을. ‘마음속에 노래를 주시고 배 속에 고기를 주시는 귄님’을 찬양하며 길고도 추운 겨울밤을 펭귄들은 노래로 이겨낸다. 유난히 혹독했던 어느 겨울에 멤피스는 품던 알을 떨어뜨렸다. ‘절대로 품고 있는 알을 떨어뜨리지 말라.’는 최고의 금언을 어긴 그는 그해 겨울 가장 열렬히 노래한 펭귄이었다. 하지만 그의 아들 멈블은 남들보다 늦게 남들과는 다르게 태어났다.
도그마와 터부로 지배되는 어둠의 사회. 금기를 어기고 태어난 그가 그 사회의 지배질서와 대립할 수밖에 없는 것은 운명이 아니었을까? 노래 대신 춤을 가지고 태어나 따돌림 당한 채 혼자만의 공간에서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멈블. 그의 마음속에서 싹트고 자라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갈망은 낡은 세계를 바꿀 혁명의 씨앗이었을 것이다.
멈블의 춤을 위협으로 받아들인 지배세력은 물고기가 줄어드는 위기를 그의 탓으로 돌려 그를 추방한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멈블이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된다. 물고기가 없어지는 원인을 찾아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려는 멈블은 인간과 만나고, 춤으로 그들과의 소통에 성공함으로써 펭귄 마을을 위기에서 구했기 때문이다. 물고기도 돌아오고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펭귄들의 새로운 세계는 다양성과 자유, 소통, 평등의 가치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사회이다. 맹목적 신앙숭배와 권위적 지배질서에 의해 개인이 억압받는 전체주의 사회는 멈블의 발짓에 의해 깨진 것이다. 이렇게 멈블은 고난의 운명을 타고나 외로움을 벗하며 성장하고, 모험을 통해 자신의 운명을 시험하였으며 혹독한 시련을 이기고 돌아와 낡은 질서를 깨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냈다. 사람들은 그런 자를 영웅이라 부른다.
사람들은 아직도 영웅을 기다린다. 하지만 현대사회에는 한 사람의 슈퍼 영웅이 아니라 수많은 멈블들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도 한 때는 멈블이었던 적이 있지 않았던가? 부당한 권위 앞에 순수한 마음 하나로 당당하게 맞섰던 순간이, 지금보다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입술을 깨물었던 그런 순간이 우리에게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안의 멈블은 어디에 있는가. 자신의 다름을 부끄러워하며 남과 같아지려고 하는 순간에, ‘아니오’라고 하고 싶지만 남들 때문에 ‘네’라고 하는 순간에, 길의 끝에 서서 막아야 할 것들을 위해 온몸을 던지지 못하고 뒤돌아선 그런 순간들마다 멈블은 눈을 감았을 것이다. 그렇게 멈블은 우리 안에서 오랜 시간 잊히고 버려지고 잠들어 있을 것이다.
불온함이 더 이상 아름다움이 아니라 두려움이 되어 버린 지금, 우리 안에 잠든 멈블을 어찌할 것인가. 더 이상 아름다운 시절은 없는 것인가. 이제라도 멈블을 따라 신나게 힘차게 세상을 바꾸는 발짓을 해 보는 것은 정녕 불가능한가. 그런데 가슴을 두드리는 멈블의 발짓, 그 경쾌한 소리가 여전히 내 귀에 들리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