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보이기:     모듈 :   
처음으로  
  Search
Start
Get Cookie : ASDHFASDJK_naramal_so
Cookie Exist
0001-01-01 00:00

End
전국국어교사모임 바로가기



글쓰기강좌
 

 댓글을 남겨주세요 close  
제목
제4차 감상글 5모둠 조승아
조회 14
회원이미지조승아
2011-11-12 07:35:41
       
‘Happy Feet’에 대한 믿음과 사랑
<4차> 2011. 11. 12. 조승아
 
  멈블의 음치는 멈블이 속한 사회에서는 용납되지 않는다. ‘하트송’을 찾지 못한 멈블은 낙오자가 되고 외톨이로 자란다. 멈블의 ‘댄싱하트(발구르기)’는 오히려 불길한 징조(펭귄 마을 기근의 원인)로 몰려 추방당한다. 그런 멈블이 안타까운 아버지 멤피스는 멈블에게 변화를 요구하나 멈블은 이에 응하지 않는다. 멈블은 자신이 지극히 정상임을 주장한다. 그리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사라지는 물고기를 찾아 떠난다.
  멈블의 이러한 힘은 어디에서 왔을까? 어머니 노마진은 멈블에게 믿음과 사랑을 준다. 아들을 위해 기존의 체제와 권위에 당당히 맞선다. 학교에서 받지 못한 멈블의 졸업장은 가족 안에서 해결하며, 펭귄마을에서 멈블이 추방당하는 순간에도 남편과 지도자를 비판한다. 멈블의 성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이다. 위대한 사람들의 일생에서 우리가 종종 목격하는 부분이다. 자식의 ‘있는 그대로’를 믿어주고 인정하며 사랑을 아끼지 않는 어머니가 그들의 뒤에 있다. 멈블의 연인 글로리아 역시 멈블을 ‘멈블’이게 하는 중요한 존재이다. 한 인간이 가장 자기답게 설 수 있고 이를 지킬 수 있는 원동력은 가족이며 그 중 어머니와 배우자의 믿음과 사랑이 으뜸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멈블이 처음부터 ‘하트송’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특별히 개인지도를 받아보지만 멈블이 음치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노래대신 발을 구르는 아들을 보고 멤피스는 절망하지만 노마진은 귀엽게만 본다. 바로 여기서 멤피스와 노마진은 큰 차이를 보인다. ‘하트송’을 잘 할 수만 있다면야 평탄한 삶이 보장된다. 그러나 멈블이 음치인 이상 ‘하트송’만을 고집하며 좇는다면 멈블은 불구자로 불행하게 살아야 한다.
  우리의 삶 또한 ‘하트송’을 향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좀 더 빨리 잘 할 수만 있다면 영재교육도 마다하지 않는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그래도 너그럽다. 그러나 학년이 올라갈수록 ‘국영수~’에 얽매이며 낙오자는 늘어간다. 성장할수록 잘 하는 것이 없어지는 아이들에겐 행복이 멀어지기만 한다.
  병아리 무리 속의 청둥오리새끼(『닭장을 나온 암탉』-황선미)는 결코 닭이 될 수 없다. 청둥오리가 자신이 청둥오리임을 인정하지 않는 한 불행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암탉은 자기가 품은 알이 청둥오리임을 알아본다. 청둥오리 또한 자신이 닭이 아님을 인정하는 순간 자유로워지며 청둥오리로 살 수 있는 최선의 삶을 산다. 청둥오리인데 닭과 같아지려 노력하고 꾸민다면 가짜다. 포장만 그럴듯할 뿐이다. 진짜 닭으로 살지 못하며 그럴 수도 없기 때문이다. 안데르센의 「미운 새끼 오리」와도 같은 맥락이다. 닭은 닭대로, 오리는 오리대로, 백조는 백조대로의 삶이야말로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닭일 수도, 오리일 수도, 백조일 수도, 또는 그 무엇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 무엇인지를 찾기도 전에 모두가 닭이 되어야 한다면 닭이 아닌 경우엔 불구자로 살 수밖에 없다.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많은 아이들이 자신이 갖고 태어난 ‘있는 그대로’를 인정받지 못하고 잃어버린다. 그리고 절망한다. ‘Happy Feet'를 알아보아 주는 부모, ‘Happy Feet'을 찾아 주는 학교, ‘Happy Feet'를 인정하는 사회가 아쉽다.
 
 회원이미지조승아  2011-11-12 07:37   답글    
많이 늦었습니다. 얕고 짧아 반 발짝 나가기도 어렵고 고통스럽습니다. ㅠㅠ
 회원이미지최시한  2011-11-12 23:49   답글    
제3차글에 여기저기 옹이가 있었다면 그것들이 꽤 풀린 글입니다. 그만큼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글이 1-3단락과 4-6단락으로 쪼개지는 듯한 점이 있는데, 그것은 영화 이야기와 그것을 재료로 하게 된 우리 현실 이야기가 매끄럽게 연결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맨 앞에 우리 현실 문제와 이 영화를 연결하는 도입부가 있었다면 좋았을 것입니다.
마지막 문장이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제목에 사용했을 때, 전하려는 뜻이 충분히 담기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영문자를 사용한 것도 좀 거슬리구요.
'있는 그대로'를 발견하고 발전시키지 못하는 우리의 (교육) 현실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그런 현실에서 이 영화가 지닌 의의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 적었다면 더 풍부한 글이 되었을 것입니다. 어째서 "반 발짝 나가기도 어렵고 고통스러운" 것인지, 그런 점들을 더 생각하면서 아울러 따져 보시기 바랍니다.
    2011-11-13 19:54   답글    
선생님 글을 읽으며 따뜻한 어머니의 마음을 느껴집니다. 교육이 어머니 품같은 것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있는 그대로'살아가도록 아이들의 자존감을 키우는 교육을 생각해보게 하네요. 감사합니다.

댓글을 남겨주세요     ( 0 / 2000자 ) ( 최대 2000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