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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모둠] 해피피트 감상글 3차
조회 7
회원이미지김옥순1
2011-11-02 21:42:13
해피 피트-소통을 향해 나가는 행복한 발걸음
   
  불통은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사람들이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의 사고가 그 집단을 지배하는 통념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권위와 결합하여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게 된다. 따라서 그 집단의 삶의 질서와 다른 삶의 방식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은 배척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다른 삶의 방식은 곧 기존의 질서에 대한 도전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그래서 해피 피트의 멈블도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배척의 대상이 되었다. 왜냐하면 멈블은 황제펭귄 집단의 고유한 소통 방식인 하트송을 부르는 대신에 탭댄스로 소통하려 했기 때문이다. 황제펭귄 집단에게 하트송은 매우 중요하다. 황제펭귄들은 자신의 영혼을 담은 하트송을 통해 짝을 구고, 하트송을 부르며 혹독한 추위 속에서 알을 품으며 고통을 견뎌낸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집단의 결속력을 높여준다. 그래서 태어나자마자 어린 펭귄들은 하트송을 배운다.
  하지만 멈블은 너무도 심한 음치이다. 그래서 노래를 배울 수 없다. 어린 멈블은 무리에서 떨어져 혼자 탭댄스를 춘다. 무리에서 버려진 외롭고 슬픈 존재 멈블. 그러나 멈블은 자신의 능력을 비하하거나 부끄럽게 생각하며 숨지 않는다. 그렇게 하는 대신 무리 밖으로 나가 새로운 존재들을 만난다. 발찌를 한 갈매기, 아들러 펭귄 친구들과 이상한 고리를 목에 건 러블레이스 등등.
  러블레이스와의 만남은 멈블의 인식을 틀을 깨준다. 사이비 종교 교주 같은 러블레이스의 모습을 통해 노아가 갖고 있는 권위가 얼마나 우스운 것인지를 알게 된 것이다. 또 러블레이스의 목에 걸린 이상한 고리를 통해 자신들의 세계 외에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함을 인식한다.
  이러한 인식을 갖고 황제펭귄의 무리에 돌아온 멈블은 위기에 처한다. 황제펭귄의 집단은 멈블의 춤을 무질서와 일탈이라 규정하며 멈블이 외국인(아들러 펭귄)들을 데려와 자신들의 집단을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기근의 원인이 멈블의 불경한 춤에 있다고 주장하며 노아는 멈블을 집단에서 추방한다. 멈블은 기근의 원인이 외계인들에 의한 것이라 주장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멈블의 인식은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는 위험한 생각이기 때문이다.
  멈블의 추방은 펭귄 세계와 인간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인간세계에서 멈블의 등장은 인간의 통념을 깨는 큰 사건이 된다. 감독은 멈블의 이야기를 진행해 가면서 갈매기의 발찌, 침몰하는 포크레인, 러블레스의 목걸이 등을 통해 인간의 힘이 남극의 세계에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자연에 대한 횡포는 포경선이 있던 항구의 황폐한 모습, 거대하고도 앙상하게 남은 고래의 뼈 등을 통해 보여주고 있으며, 그 절정은 동물원에 갇혀 미쳐가는 멈블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은 자연을 인간을 위한 자원으로 인식해 왔다. 남극에 사는 고래와 물고기들은 인간을 위한 식량자원이며, 동물원의 펭귄은 인간을 위한 관광자원일 뿐이었다. 그것이 인간을 지배하는 권위적 통념이었고, 인간은 아무 의심 없이 그렇게 살아왔다.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이익을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은 어리석기 짝이 없고,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사고로 치부되어 왔다. 심지어는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사회로부터의 격리 대상으로 생각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환경에 대한 무자비한 파괴는 결국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로 나타났다. 영화 속에서 무너져 가는 거대한 빙하는 인류가 발전시켜온 문명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난 멈블은 사람들의 생각에 변화를 가져오게 한다. 세상의 하부구조에 속하는 한낱 펭귄 따위가 뭐 그리 중요하냐는 주장과 펭귄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다는 주장이 부딪친다. 격론 끝에 기존의 인간 중심 세계관을 깨고 남극에서의 어획을 금지하게 되고, 펭귄들은 다시 평화롭게 살게 된다.
  남극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인간은 외계인이자 침입자일 수밖에 없다. 인간의 마구잡이식 어로 활동은 주인이 있는 땅에 들어가 그 땅을 마구 훼손하고 그들의 식량을 약탈하는 일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알기 이전부터 펭귄은 남극에서 살아왔다. 그러니 그 땅의 주인은 펭귄들이다. 우리는 그들을 오만한 시선으로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옆에서 그들을 봐야 한다. 그것이 인간과 펭귄이 소통하는 길이고 더 나가서는 자연과 소통하는 길인 것이다.
  멈블은 먼 길을 다녀옴으로써 자신의 집단이 갖고 있는 지배적 통념을 깼다. 자신의 주장을 증명해 보임으로써 무리로부터 인정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그 길은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 너무 멀고 험난한 길이었다. 멈블은 영화 속 주인공이기에 영웅으로 자신의 무리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기존의 잘못된 질서에 대항했던 많은 사람들은 처절히 싸우다 패배하고 이 세상에서 사라져 갔다. 그 싸움의 과정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힘을 가진 집단의 잘못된 통념에 의해 희생되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통념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 이주노동자들, 새터민들, 성적 소수자들.....새만금의 생명들, 4대강 공사로 고통 받을 자연과 사람들......
  인간은 싸우기라도 하지만 자연은 당할 수밖에 없다. 당하기만 하지만 그 끝에 오는 인간에 대한 복수는 인류 전체의 존망을 결정짓는 무서운 복수이다. 그 복수가 이루어질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다.
  우리는 왜 항상 먼 길을 돌아야만 하는가? 이성의 힘을 자랑하는 인간이 왜 잘못된 통념에 사로잡혀 진실을 보지 못하가? 눈앞에 너무도 처참한 결과를 보고서야 땅을 치며 후회를 하는 그런 일은 더 이상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유연해져야 한다. 나와 다른 존재가, 나와 다른 생각이 내 앞에 나타났을 때, 그 존재와 생각을 내 인의 틀에 맞추라 강요할 것이 아니라 내가 갖고 있는 인식의 틀을 점검하고 잘못된 것이 있다면 그것을 깨려는 부림이 있어야 할 것이다. 멈블의 발걸음이 진정 ‘happy feet'가 되기 위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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