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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모둠] 4차 수정글 - 새로운 날을 여는 희망의 몸짓 해피피트- 학산정보고 유자영
조회 15
회원이미지유자영
2011-11-05 13:55:38
 새로운 날을 여는 희망의 몸짓 해피피트

  황제 펭귄 마을에서 태어난 멈블은 노래를 못해서 외톨이로 자란다. 황제 펭귄들은 펭귄이란 동물은 노래를 못할 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집단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은 노래를 잘하는 것이다. 멈블은 노래를 못하는 대신 탭댄스를 잘 추지만 불행하게도 텝댄스따위는 펭귄집단의 우두머리 노아에게는 노래 하나로 통일된 질서를 위협하는 것일 뿐이다.  질서를 헤친다는 이유로 쫓겨난 멈블은 역경 끝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소통수단인 탭댄스를 열심히 춰서 옆마을 아델리 펭귄들에게 인정을 받고, 아델리 펭귄들의 우두머리 러브리스가 신이 주신 계시물이라고 자랑하는 비닐고리 때문에 죽을지경이 된 것을 해결해준다.

 영화 속 펭귄의 모습은 사람들과 참 비슷하다. 두 발로 서서 뒤뚱거리며 다니는 모습이나 둥글게 파인 얼음 산성 속에 떼지어 사는 모습에 그들을 지휘하는 노아 일당은 높은 곳에서 큰 소리를 치는 것이 말이다. 또, 수천 수만마리나 되는 펭귄들 속에서 자기 짝과 새끼를 찾아내어 가족을 유지하는 모습도. 남극의 극한 추위에 맞서서 날개가 지느러미처럼 변해 그 추운 물속에 들어가 물고기를 잡고, 암컷이 알을 낳으면 수컷은 두 달이나 먹지도 않고 알을 품고 있다고 하는데, 그 끈질긴 생명력이 존경할만하다.

 이 영화에서 이러한 펭귄의 특성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내고자 한 것은 바로 무리생활을 이끄는 지도자의 모습과 그들의 지휘 아래에 놓인 멈블같은 외톨이가 어떻게 거대한 무리와 소통해 나가는지에 대한 것이다.

 먹이가 줄고 빙하는 녹고, 바다는 오염되어 목에 비닐고리가 걸려 숨쉬지 못하는 펭귄도 나오고, 이들의 천적 도둑 갈매기의 발목에는 플라스틱 고리가 달려있는 이해할 수 없는 위기상황을 노아는 물고기신에 대한 숭배로 해결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우두머리들은 히틀러같은 강한 말투로 집단을 지휘하고, 항상 높은 곳에서 주변을 호령한다. 하지만 멈블은 끊임없이 진실을 찾아 소통하려 노력한다. 텝댄스로 젊은 펭귄들과 춤판을 벌이다 물고기가 줄게 하는 누명을 쓰고 쫒겨났지만 물고기가 줄어드는 원인을 찾아 인간 세상 수족관까지 가서 텝댄스로 소통하여 인간들이 펭귄의 처지를 생각하도록 만든다. 

 노아는 집단 유지를 위해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고, 단지 물고기신에게 매달리며 노래가 아닌 텝댄스를 춘다는 이유로 노아를 쫓아내지만 노아는 다들 무시하는 외톨이지만 러브리스의 비닐고리나 도둑갈매기의 발목고리를 실마리로 잡고 문제를 파고들어 결국 물고기 씨를 말리는 건 인간이란 사실을 밝혀내고, 인간에게 펭귄의 문제를 호소한다. 그리고, 남극까지 가서 인간과 함께 텝댄스를 추기에 이른다. 외톨이 노아는 그리하여 인간과 소통하는 새로운 지도자가 된다.

 지배자의 경고에도 아랑곳없는 노아의 끝없는 도전과 텝댄스로 소통하려는 노력은 인간이라는 외계인과도 소통할 수 있다는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낸다. 어느 사회나 집단이든지 소통은 생명체에 도는 피와 같다. 피가 돌아야 생명체가 살 듯이 소통이 되어야 집단이 유지될 수 있음을 멈블은 텝댄스를 추며 앙징맞은 눈에 반짝이는 눈빛으로 말한다. 그래서 물고기 신을 들먹이는 것과 누가 딴짓을 하는지 감시하는 것 외엔 하는 게 없는 구부정한 노아와는 다른 새로운 희망의 지도자가 된다.

 늙고 구부정한 지배자 노아와 귀엽고 발빠른 멈블의 대비, 인간의 교회 그리고 펭귄의 신전과 나머지 무리들의 대비, 딱딱 끊어지며 호통하는 히틀러식 지휘와 경쾌한 팝송 그리고 멈블의 텝댄스, 평화로운 남극의 풍경과 폐허가 된 인간의 기계문명 모습으로 감독은 소통하는 새날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별4개  회원이미지최시한  2011-11-05 20:54    
대상(영화)에 충실하려는 노력이 글을 더 얽히게 한 듯합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오히려 한 가지도 적절히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재 설정(결국은 제목 설정)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던 것입니다.
단락을 바꿀 때마다 한 줄 비우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연결이 약한 것을 당연한 것처럼 만들기 때문이요, 어떻게든 연결성을 얻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제목이 예쁘기는 해도 공허해 보이는 것은, 연결성 혹은 통일성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배세력에 대한 항거 혹은 소통의 문제를 중심으로 살릴 것은 살리고 버릴 것은 버리는 식으로 글을 다듬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다 보면, 본인이 제목에서 "새로운 날" "희망의 몸짓" 등으로 표현하려고 했던 내용이 과연 무엇인지, 그것이 영화에 어떻게 나타나 있는지를 자신이 구체적으로 파고들지 않았음을, 파고들지 않은 것을 잘 다룬 것처럼 적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별4개     2011-11-05 21:19    
길은 험하고 멀어도 나 가야 하리.
내 갈 곳을 안다면
그것은 행복하지 않은가

우리의 목표는 끝까지 견디는 것

이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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